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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엄마', '아빠' 라 부르는 한 아이가 있다. 10월 어느 날 대구의 한 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지성(가명·3) 군이 할머니를 향해 "엄마"라고 크게 부른다. 벤치에 앉은 할머니 조성연(가명·44) 씨는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인다. 그때 옆에 이웃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쟤가 제 몸에 불을 저지른 이상한 남자 손자야?"

조 씨는 지성 군을 데리고 급히 집에 돌아오지만 그새 수군덕거림이 지성 군의 귀에 들어왔는지 "아빠 불에 탔어?"라고 지성 군이 묻는다. 조 씨는 "아파서 병원 간 거야"라고 둘러댄다.

◆ 미혼모 딸이 낳은 손자

조 씨는 지성 군이 처음 집으로 온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한 병원에서 딸이 아이를 낳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집을 나간 뒤 도통 연락이 없던 그들의 첫째 딸 유진(가명·현재 나이 27) 씨의 아이였다. 딸은 아이 아빠가 없다고 했고 몸이 회복되자마자 또 집을 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손자. 조 씨 부부는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은 심한 지체 장애로 일을 하지 못해 조 씨가 식당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던 참이었다. 없는 형편이었기에 지성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밟히는 손자를 어디 입양 보낼 수도 없는 터였다. 그렇게 손자를 마치 친자식처럼 거둬 키웠다.

딸은 아이를 낳고도 집에 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속을 자주 썩여 온 딸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하교 뒤 늦은 밤까지 집에 오지 않아 조 씨는 아이를 찾으러 다녀야 했고 중‧고등학생 때도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잘 못 해 졸업마저 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에야 딸은 정신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도통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조 씨는 알 수가 없다. 아주 가끔 오는 집에서마저 조 씨가 자는 사이 휴대전화나 옷 등을 모조리 훔쳐 팔아버린다. 그런 엄마의 존재를 모르는 지성 군에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연스레 엄마와 아빠가 됐다.

◆ 아들들은 사고치고 남편은 분신

조 씨 부부에게 아픈 손가락은 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성인이 된 세 명의 아들이 더 있지만 모두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하고 사고만 치고 다녔다. 학교에 적응을 못 하는 것은 물론 남의 물건을 훔쳐 소년원에도 자주 갔다. 사춘기만 지나면 조금 나아질까 싶었지만 그들은 성인이 돼서도 마음을 잡지 못해 여전히 방황하는 중이다.

그런 모습에 조 씨는 모두 '내 탓'이라며 가슴을 세게 쳤다. 몸이 편치 않은 남편이어서 결혼과 동시에 조 씨는 내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자연스레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남편의 몫이었지만 장애가 심한 탓에 제대로 봐주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소득도 200만원 안 되는 월급이 전부였던 터라 자녀 모두 넉넉하게 먹고 자라지를 못했다. '왜 도둑질을 했냐'는 조 씨의 다그침에 '배가 고파 그랬다'는 아들의 대답이 돌아오자 조 씨는 숨이 턱 막혀 버리고 만다.

설상가상 조 씨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은 두 달 전 홧김에 분신을 시도했다. 오래전부터 몸이 불편했던 그는 우울증과 분노조절 장애에 시달려 살았다. 남편은 자신을 향해 '병X'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주민들의 비아냥거림을 자주 받아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놀림거리가 됐고 화가 난 남편은 그만 제 몸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의 화상을 입은 데다 의식이 희미하다.

오롯이 모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조 씨는 나날이 한숨만 깊어진다. 남편의 병원비는 1천만원이 훌쩍 넘었지만 자신이 버는 돈으로는 갚을 길이 없다. 또 아들들이 사고를 쳐 남긴 빚도 갚아야 하고 무엇보다 지성 군에게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를 사줄 돈도 없다. 그나마 아들들은 퀵 배달 일을 하러 나서지만 하루 벌어 모조리 다 쓰기에 손을 벌리기도 어렵다.

그런 조 씨는 지성 군의 발에 맞지 않는 운동화를 억지로 끼워 넣다 그만 눈물을 펑펑 쏟아 내버리고 만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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