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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도 마이너스다. 통장 내역을 살펴본 곽민정(가명·21) 씨는 고개를 푹 숙인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이미 식비를 줄여가며 최소한의 금액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제 이도 소용없다. 엄마, 아빠가 세상에 없다. 여동생 민주(가명·19)·민희(가명·13) 양을 민정 씨가 어떻게든 키워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 울 시간도 없다.

작은 방에 있던 민주 양과 민희 양을 불러 모아 머리를 맞대보기로 한다. 막내 민희 양이 "언니, 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칭얼대자 민정 씨는 찬찬히 설명해주겠다며 달랜다. 그렇게 찾은 방법은 급식 카드로 편의점 도시락을 사둔 뒤 냉동을 시키자는 것이다. 냉동된 밥과 반찬을 조금씩 꺼내 녹여 먹으면 돈도 아끼고 오래 먹을 수 있다는 이유다. 민정 씨는 왠지 모를 착잡함이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 세상 떠난 부모, 홀로 남은 세 자매

지난해 10월, 엄마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8시간 전, 엄마는 병간호를 하던 민정 씨에게 "빨리 집으로 가라"며 화를 냈다. 엄마의 꾸지람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정 씨는 꼭 그날이 엄마와의 마지막 날인 것만 같았다. 집에서 잠이 든 지 얼마 안 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엄마는 세 딸과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다.

엄마의 유방암은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도 안 돼 발병했다. 일이 많아 쉬는 날도 없었던 아빠는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침 출근길, 아빠는 거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엄마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 딸을 위해 온종일 일에 나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와버린 유방암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수술 후에도 몸 회복보다 엄마에겐 세 딸이 더 중요했다.

민정 씨 역시 대출금과 빚에 허덕이던 엄마를 돕고자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거나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몸은 4년 전 간으로 전이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몸 상태가 악화하면서 엄마는 차츰 떠날 준비를 했다. 새벽 아르바이트에 나서기 전 찾은 엄마 병실에서 모녀는 '장례식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출금과 빚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며 마음 정리를 해갔다.

◆ 엄마 역할하는 맏딸, 의지할 어른 없어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2억원이 넘는 빚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도록 갚지 못한 탓에 엄마의 죽음과 동시에 빚 독촉이 잦았다. 우선 빚이라도 갚기 위해 엄마 사망보험금을 사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세 자매는 큰이모가 사는 낡은 임대 아파트로 들어왔다.

세 자매는 의지할 어른 하나 없어 매일 불안에 떤다. 이곳에 이사온 뒤 한 남성이 자꾸 세 자매의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가 하면 창문 방범창 주위를 맴돈다. 경찰에 신고해봤지만 마땅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답을 들은 뒤로 세 자매는 저녁 외출을 삼간다. 큰이모가 있지만 이혼한 뒤 심신미약상태인 모습을 많이 봐와 세 자매가 마음 편히 기댈 수가 없다. 월세마저 감당하기가 어렵지만 이사갈 비용도 없다.

기초생활수급비 120만원으로 월세와 동생 학원비, 식비, 생필품 구입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특히 수능을 앞둔 둘째 여동생의 학원비도 만만찮다. 민정 씨 본인 역시 얼른 돈을 벌고자 전문대에 들어갔고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어 공부까지 병행해야 하지만 동생들 걱정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 여기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집 문제까지 얽혀 머리가 아프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던 민정 씨. 몸이 아플 때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얼마 전 중이염에 걸려 찾아와 병원에 다니고 있는 그는 엄마 잔소리가 그립다. 얼마 전 엄마가 꿈에 나왔다던 민정 씨. 그렇게라도 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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