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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가까운 시간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산 중턱에 위치한 검은색 천막으로 쓰인 비닐하우스 집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할머니 예정숙(가명·74) 씨를 사이에 두고 손녀 지우(가명·8)와 손자 지호(가명·5)가 서로 자기를 보고 자라며 할머니를 졸라댄다. 잠시 할아버지 최영오(가명·88) 씨 곁으로 간 지호가 별안간 "으, 할아버지 냄새나"하는 장난과 함께 할머니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 모습에 셋은 한바탕 웃는다.


정숙 씨의 아들네가 낳은 지우와 지호. 며느리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은 채 다른 남자를 만나러 떠났고 아빠 최재원(가명·37) 씨는 자녀들 양육을 위해 돈을 벌러 나갔다. 3년 전 지우와 지호는 어린 나이에 노부부 곁으로 왔다.


◆ 알몸으로 쫓겨나고 밥 못먹고…

스무 살에 엄마가 된 아이들의 엄마는 툭하면 지우와 지호를 방치하기 일쑤였다. 어린 며느리가 손주 밥은 잘 해 먹일까 정숙 씨는 매주 반찬을 들고 아들네를 찾았지만 늘 반찬은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였고 과자봉지만 나뒹굴고 있었다.


아빠 재원 씨가 일을 갔다 밤늦게 들어온 추운 겨울 어느 날, 집에 지우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지우의 행방을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딸을 찾아다니자 위층에 살던 집 주인의 집에서 지우가 나왔다. 그날따라 지우의 칭얼거림이 심하자 아내는 지우의 옷을 다 벗긴 채 밖으로 쫓아냈다고 했다. 영하의 추위에 몸이 얼음장같이 변하며 오들오들 떨며 문 앞에서 울고 있던 지우를 집주인이 본인의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재원 씨가 타일렀지만 아내는 좀처럼 행동을 고치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지우를 알몸으로 내쫓아 보냈고 부부는 크게 싸웠다. 아내는 그 후 외도를 일삼았고 참다못한 재원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왔다.


◆ 부모 역할 하는 할머니‧할아버지

삐쩍 말라버린 손주들의 모습에 정숙 씨는 속이 탔다. 어떻게든 어린아이들을 키워내야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본인의 식사량을 줄여가면서 손주 몸에 좋다는 건 모조리 다 사 먹였다. 그런 사랑 덕분일까. 아이들은 점차 밝아졌고 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다. 가끔 엄마를 찾았지만 정숙 씨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자"며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고자 발버둥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커가는데 생활비는 자꾸만 부족해진다. 노부부에겐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령연금이 소득의 전부고 아들이 버는 월급은 1천만원이 넘는 대출금을 갚는 데 족족 나간다. 게다가 코로나19로 기계 부품 공장에 다니던 아들은 일자리마저 잃어 일용직을 전전한다. 딸 최혜원(가명·38) 씨가 있지만 지적장애에 다운증후군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집 역시 네 식구를 품기엔 너무 좁다. 방이자 부엌, 거실인 비닐하우스가 이들의 집이다. 이곳은 이미 옷과 장난감으로 넘쳐나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공간마저 없고 화장실도 재래식이라 변기가 너무 커 아이들은 그 안으로 매번 쑥 빠져버린다. 게다가 학교에 가기 위해선 산 중턱을 내려와야 하는 탓에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전동차에 올라타고 매일 아슬아슬한 등굣길에 나선다.


지적장애를 가진 딸 혜원 씨를 돌보는 것도 노부부 몫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 적응을 못 했고 성인이 된 후 장애인주간 센터에 다녔지만 타인과 관계가 어려운 데다 매번 몸이 아프다, 집에 가고 싶다며 난리를 피우는 탓에 사회생활이 어렵다. 그런 지희 씨 역시 꼼꼼한 돌봄이 필요하지만 매번 조카들에게 순위가 밀려난다.


그렇게 노부부는 점점 말라간다. 예전 경찰공무원이었던 영오 씨는 업무 도중 사고를 당해 시각을 잃었고 9년 전 폐암까지 겹치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몸무게가 35㎏ 밖에 나가지 않는 정숙 씨는 척추 옆굽음증으로 인해 등에 척추가 튀어나와 버렸다.


척추 치료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정숙 씨. "내가 치료받으면 아이들은 누가 키우냐"며 연신 손사래를 치던 그였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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