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캠페인 보기



새벽녘 기계음만 들리는 한 자동차 부품 공장. 컨베이어벨트 앞에 선 민서인(가명·35) 씨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몸을 침대로 던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깊은 하품을 한번 내뱉은 뒤 다시 일에 집중한다.


야간 생산직을 하고 있는 서인 씨. 밤잠이 많은 탓에 팀장에게 많이 혼도 났다. 몇 달이 지나도 졸음과의 사투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를 꽉 물고 버텨내 돈을 벌어야 한다.

빼앗긴 두 딸을 찾기 위해서다.


◆ 폭력과 성매매 일삼던 남편

지난 6월 3일 오후 4시 30분. 서인 씨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어김없이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휴대전화를 들어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둘째 딸이 학대를 당하고 있어요."

시청 아동학대 담당 공무원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딸을 보호시설에 보내야겠다며 서인 씨에게 서명을 하라고 했다. 서인 씨는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고작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된 둘째 아이마저 빼앗길 수 없었다. 2년 전 남편은 첫째 딸도 키우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학대를 당한다"며 신고를 넣어 시설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한참의 사투 끝에 둘째마저도 서인 씨 손을 떠났다.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었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5개월쯤부터 남편의 발길질은 시작됐다. 서인 씨가 '답답하다'는 이유였다. 야외에서도 남편은 사람들의 눈길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밀치고 때렸다. 그렇게 첫째가 태어났지만 분윳값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엄마였지만 아빠는 늘 영양가 없는 값싼 것만 찾았다. 아이에게 좀처럼 애정이 없었던 것은 물론 일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던 탓에 서인 씨는 갓난아이를 재워두고 대신 생활비를 벌러 나서야 했다.


부부싸움도 잦았다. 지난 2019년 어느 날, 다툼 뒤 남편은 서인 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갈 곳이 없던 서인 씨는 친구 집을 찾았지만 남편은 그 사이 "아내가 가출해 아이가 방치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서인 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첫째는 집을 떠나고 없었다.


그 후 남편은 폭력 대신 성매매로 발길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들어섰고 출산을 앞둔 17일 전 불법 성매매업소를 찾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미 남편은 둘째를 임신한 3개월부터 여러 성매매업소를 찾아다녔다. 통화내역을 뒤져 보니 친구들에게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 것은 물론, 여성들에게 비싼 선물 공세를 펼치고 다녔다. 얼마 전에는 남편이 몸캠피싱을 당했다며 경찰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 보호시설에 있는 두 딸 찾기 위해 고군분투

둘째마저 빼앗긴 서인 씨는 그 길로 친정집으로 떠났다. 폭력과 성매매 사실을 뒤늦게 안 친정 가족들은 이혼소송과 함께 아이를 찾기 위해 손을 보태고 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은 탓에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가장 힘든 건 두 딸에 대한 그리움이다. 첫째는 시설에서 가끔 안부 전화를 주지만 둘째 소식은 잘 듣기 힘들다. 워낙 어릴 때 헤어진 터라 엄마 얼굴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도 크다. 그렇다고 매번 시설에 전화하자니 눈치도 보인다. 첫째를 먼저 보냈을 때는 매일 눈물로 지새웠다는 서인 씨. 그는 찍어둔 딸 사진만 한참 들여다본다고 했다.


서인 씨는 아이를 데려오고자 고군분투 중이지만 거액의 생활비 마련이 막막하기만 하다. 시청과 시설 측에선 아이의 가정 복귀를 위해선 적어도 전셋집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해 열심히 돈을 벌고 있지만 수천만원대의 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또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아이가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탓에 엄마는 홀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크다. 남편과는 이혼을 하기 위해 법정 앞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매번 약속을 깨고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를 빼앗기기 전 친정으로 아이와 도망칠 걸…'하는 후회에 매일 시달리는 서인 씨.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당장 앞날을 위해 어떻게든 버텨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