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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가명·60) 씨는 어린 시절 늘 앞머리를 축 길게 늘어뜨려 다니던 소녀였다. 3살 때 잃은 왼쪽 눈 때문이었다. 집 문지방에 넘어져 눈을 크게 다쳤다. 결국 눈은 실명됐다.


의안을 넣은 눈은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놀림거리가 됐다. 친구들의 각종 욕이 비수가 돼 가슴에 하나둘씩 꽂혔다. 도통 학교에 적응할 수도 없어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영선 씨의 세상은 집이 전부였다.


◆만성 우울증에 척추까지 다쳐

삶의 첫 단추가 잘못 꿰였을까. 악순환이 계속됐다. 스무 세 살에 시작한 결혼 생활은 5년 만에 끝났다. 운송업을 하던 남편은 외도를 저질렀다. 타 지역에서 새로운 여자와 이미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관계 정리를 부탁하고자 찾은 그곳에서 본 그들의 다정한 모습에 마음을 접었다. 잔인하게도 남편은 법정에서도 그 여인과 함께 나타났다.


하나뿐인 딸을 데리고 영선 씨는 친정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자식만은 끝까지 책임지는 엄마가 되고 싶어 친정에 딸을 맡겨둔 채 타 지역에 농사일을 하러 나섰다. 인부들은 "젊은이가 이런 궂은 일을 하냐"고 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각종 논과 밭을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모텔 청소 등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모조리 다 했다. 매일 밤 딸 모습을 그리며 울음을 삼켜냈다.


하지만 시간은 영선 씨의 바람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상처만 받았지 단 한 번도 위로받지 못한 영선 씨의 마음은 차차 병 들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점차 마음을 갉아먹었다. 하필 그즈음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척추까지 다치게 되면서 일을 못 나가게 됐다. 어느덧 우울증은 만성이 됐다. 수없는 자해와 극단적 선택 시도가 시작되면서 응급실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남은 눈도 실명 위기

그래도 삶의 탈출구가 있는 줄 알았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던 영선 씨는 올 3월 지인의 도움으로 작은 구제 옷 가게를 시작했다. 장사를 시작하며 여러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도 점차 치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얼마 못 갔다. 다시 잘살아보고자 하는 영선 씨의 노력에 한 노인이 찬물을 끼얹었다.


소위 '진상 고객'이었다. 늙은 남자 손님은 매일 영선 씨 가게를 찾으며 트집을 잡았다. 3천원짜리 구제 옷을 샀다 바로 환불 요청을 하는 것은 물론 뜬금없이 돈 10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사고가 일어난 그 날도 어김없었다. 손님은 똑같은 트집을 잡았고 나가 달라는 영선 씨 요청에 손님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인 폭행에 저항도 못 한 채 영선 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그 후 영선 씨의 상태는 더 심해졌다. 가해자는 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풀려났고 버젓이 영선 씨 가게로 찾아오는 탓에 영선 씨는 다시 가게로 나갈 수도 없다. 가해자 '접근 금지'도 요청해봤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게다가 가게 월세는 계속 밀려만 간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지 못하기에 가게에 나가 옷을 팔아야 하지만 혹여나 그가 다시 찾아올까 발걸음을 옮기기는 힘들다.


설상가상 얼마 전 영선 씨의 남은 오른쪽 눈 시력도 더 악화했다. 녹내장을 앓고 있었지만 치료도 제때 못했고 최근에 겪은 폭력과 스트레스로 어느덧 실명 위기까지 왔다. 몸과 마음은 물론 집과 가게에 고쳐야 할 것들이 많지만 돈은 없다. 우울증이 심해진 후로 딸과 관계도 멀어진 것은 물론 넉넉히 해준 것이 없는 게 너무 미안해 딸에게 연락하기도 어렵다. 친정 식구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매번 악화되는 상황에 우울증이 계속 심해지는 영선 씨. 또 다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극단적인 생각에 휩싸여 산다. 옆집 이웃의 안부 인사에 의지한 채로 영선 씨는 생을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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