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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빨리 오라고!"

도진희(가명·32) 씨가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 둘째 아들 재호(가명·9)가 엄마를 찾는다고 난리다. 재호는 어느덧 베란다 난간 위에까지 올라서서 울부짖는다. 재호는 분리 불안증이 심하다.


재호의 불안이 무엇 때문에 시작됐는지 진희 씨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또래보다 발달이 느렸고 세 살쯤 지적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 재호는 커갈수록 통제가 잘 안 된다. 엄마 머리를 마구잡이로 뜯어버리는 것은 물론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와 씨름 하느라 엄마는 기진맥진이 돼 버린다. 남편이라도 손을 거들어주면 좋겠건만 꿈쩍 않는 모습에 진희 씨는 점점 무기력해진다.


◆ 이른 나이에 결혼, 돈 때문에 갈등

진희 씨와 남편 김성주(가명·32) 씨는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됐다. 스무 살의 나이에 아이가 생겨 혼인신고를 마쳤다.


남편은 그때부터 공사장 등 일용직에 나섰다. 첫째 딸 재영(가명·12)에 이어 둘째 재호, 셋째 재희(가명·8)가 줄줄이 태어나면서 생활비도 두 세배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희 씨는 세 아이를 돌봐 생활비를 버는 것은 온전히 남편 몫이었다. 늘 부족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남편은 일을 나가는 날을 줄였고 그때부터 서서히 갈등은 시작됐다.


늘 돈이 문제였다. 부부는 싸우는 날이 점차 잦아졌다. 진희 씨라도 아이들이 잠든 밤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했지만 남편은 의심하며 아내를 막아섰다. 그리고 매번 진희 씨의 친정 식구를 무시하는 말을 퍼부어댔다.


말싸움은 손찌검으로 변했다. 남편은 점차 진희 씨의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물건이 날아다니고 아빠의 손이 엄마 얼굴로 향하는 모습을 세 아이는 고스란히 쳐다보고 있어야만 했다. 진희 씨는 수없이 이혼을 결심했지만 본인이 떠나버리면 '세 아이'의 삶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우울증이 온 것도 그때부터였다.


◆ 폭력 속 방치된 아이들, 발달 느려

늘 엄마, 아빠의 폭력 속에 방치된 탓이었을까. 재호는 물론 첫째와 셋째 딸의 발달도 늦었다. 재영은 12살이지만 학습능력이 또래보다 떨어져 일주일에 한 번 언어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막내 재희 역시 올해 학교에 입학했지만 한글을 떼지 못해 함께 언어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다.


무엇보다 첫째 재영의 상태는 나날이 심각해진다. 둘째 동생의 장애로 매번 양보를 해왔던 탓에 내면에 스트레스가 엄청나지만 제대로 풀 방법이 없어 막내 여동생에게 불똥만 튄다. 게다가 아빠의 폭력에도 노출돼야 했다. 아빠는 딸이 제대로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며 머리채를 잡아 흔들거나 뺨을 꼬집었다. 재영은 어린 나이에 탈모까지 찾아왔다.


재호의 행동도 나날이 심해진다.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것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의 머리도 물고 늘어진다. 자신이 화가 나는 날이면 물건을 집어 던지며 엄마를 꼬집고 깨물기 일쑤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막내 재희가 점차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재호를 교육하기는커녕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대는 탓에 진희 씨는 갈수록 숨이 더 턱 막혀버린다.


어떻게든 아이들만이라도 잘 키워내고 싶지만 이제 언어치료를 받을 돈마저 없다. 지난해 남편이 허리디스크와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아 일을 나가기 어렵게 되면서다. 기초생활수급비 110만원으로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아예 없다. 월세가 하도 밀려 지난해 세를 살던 집에서 쫓겨났지만 새로 온 이곳에서도 집값은 물론이고 각종 공과금마저 벌써 밀려버렸다. 매번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다 보니 아이들 새 옷 한번 입혀보지 못했다.


진희 씨는 남편을 설득할 힘도 더 이상 없다. 친정 식구나 시댁 식구들에게도 더 이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 염치도 없다. 그렇게 부부는 힘든 삶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만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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