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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유태우(가명·48) 씨의 신음이 화장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앞에 앉아있던 아내 최예원(가명·44) 씨는 애간장이 타들어 간다. 한참을 고통과 사투를 벌인 태우 씨는 축 처진 어깨와 함께 밖으로 나오더니 방 안으로 들어간다. 직장암 3기인 태우 씨. 항암 치료에 피부는 헐고 속은 뒤집어진다. 예원 씨는 애써 밝은 척 남편을 뒤따라간다.


매사 웃는 얼굴을 하는 예원 씨지만 마음엔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 사실 조금 버겁기도 하다. 심한 지적장애에 뇌전증을 앓고 있는 하나뿐인 아들 유진(가명·18)이를 낫게 해주는 게 삶의 목표였지만 남편에게 갑작스레 직장암 소식이 찾아왔다. 하늘이 참 원망스럽다.


◆ 평생을 지적장애 아들 치료에

평생 아들만을 위해 살아온 부부였다. 미숙아로 태어난 유진이는 생후 5개월 만에 경기를 했다. 그 후 감기만 와도 폐렴으로 커져 버리긴 일쑤고 경기는 두 번, 세 번 횟수가 늘어났다. 허기가 지면 경기를 하는 데도 유진이는 분유를 먹지도 못했다. 겨우 잠에 들면 젖병을 입안에 들이밀 수 있던 터라 예원 씨는 매번 애타는 마음으로 아이의 잠자는 시간만 기다렸다.


아이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소문에 좋은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하지만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부부는 포기 않았다. 좋은 약이란 약은 모두 먹였다. 그만큼 돈도 수없이 들었다. 그럴수록 태우 씨는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자동차 도색 업을 하던 태우 씨는 그 누구보다 성실한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힘들다는 내색 한번 않고 아빠는 묵묵히 새벽마다 출근길에 나섰다.


예원 씨는 늘 오분 대기조였다. 한창 일을 하는 도중에도 유치원에서나 학교에서나 전화가 울리기 일쑤였다. 경기를 일으키는 유진이로 엄마는 매번 일하다 아들에게 달려가야 했다. 남편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볼까 아르바이트도 다녀봤지만 매번 사직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부부는 아등바등하는 하며 유진이를 키웠다.


◆ 아내는 교통사고, 남편은 직장암

묵묵히 살아가던 그들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잠깐 장애인 활동보조사로 일하던 예원 씨는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이었는지 순간 헛것이 보였고 급하게 돌린 핸들에 차는 전봇대로 돌진했다. 의식을 잃은 예원 씨가 깨어났을 땐 오른쪽 무릎엔 철심이 박혀 있는 상태였다. 아직 철심 제거 수술을 받지 못한 예원 씨는 다리를 쓰는 게 영 불편하다.


아픈 아내와 아들로 어깨가 무거워진 선호 씨는 더욱 일에 매진했다. 병원 치료비가 두 배로 늘어났기에 몸이 혹사당하는 줄도 모르고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결국 탈이 났다. 올 3월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다. 그동안 별다른 증상도 없었던 터라 갑작스레 찾아온 암을 도통 받아들이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한 가족의 생활은 모조리 멈춰 섰다.


누구보다 씩씩했던 남편은 온종일 축 쳐져 있다. 자꾸만 희망을 잃어가는 남편에게 힘을 주려 아내는 애써 손을 잡고 집 앞 산책을 나가본다. 그런 부부가 무엇보다 제일 미안한 건 유진이다. 남편의 암 투병에 유진이의 치료는 멈춰 섰다. 학교에서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채 늘 혼자인 유진이. 경기라도 하지 않으면 친구라도 좀 더 생길까 소문난 한의원에서 데려가 치료를 받지만 이제는 갈 수가 없다.


태우 씨는 내달 수술을 앞두고 있다. 당장 500만원가량 수술비가 필요하지만 그동안 모아둔 돈은 이미 바닥을 보여 급히 대출에 나서보지만 이미 가진 빚만 8천만원이다. 친정이나 시댁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다. 혹시 충격을 받을까 부모님께 암 소식을 알리지도 못했고 형제들도 먹고살기 바빠 차마 도와 달라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이 모든 걸 웃으며 이야기하던 예원 씨였지만 그의 눈에는 몇 번이나 눈물이 차오르다 내려가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애써 웃어 보이는 그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꾸역꾸역 두려운 마음을 열심히 숨기는 중이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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