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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신이 이야기를 시킨다"라는 엄마, 그런 엄마의 폭력, 집을 나간 아빠, 엄마를 때리는 정신질환 이모, 새 이모부의 폭력.

구지혜(가명·20) 씨의 마음에 차츰 병이 들기 시작했던 건 이 모든 게 시작된 열한 살 즈음이었을 거다. 침대 하나가 전부인 방 한 칸에서 지혜 씨는 드문드문 나는 옛 기억을 몇 개 짚어 본다.


엄마는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큰일 난다며 창문을 모조리 걸어 잠그고 경찰을 불렀다. 그렇게 엄마와 집을 나와 새 터를 잡았지만 학교에 적응을 쉽게 못 하는 지혜 씨의 얼굴에 엄마 손이 날아왔다. 그 뒤 교회에 나간 엄마는 "영혼이 들어온다"며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해댔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근처에 살던 작은 이모는 새 이모부를 만났다. 하지만 이모부는 지혜 씨를 이유 없이 때렸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이모도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렸다.


어린아이가 그렇게 폭력에 방치될 동안 그를 보호해줄 어른은 없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머릿속에 남겨진 건 뒤죽박죽 엉켜버린 상처와 폭력의 기억뿐이다.


◆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딸

그때부터 지혜 씨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속상한 마음은 커졌지만 이를 털어놓을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학교도 가기 싫어졌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었다. 수업도 듣기 싫었다. 세상 모든 슬픔과 외로움이 어린 지혜 씨를 집어 삼켰다. 그렇게 점점 지혜 씨는 침대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대인기피증이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엄마는 그런 지혜 씨를 돌볼 여력이 안 됐다. 외려 학교에 가지 않는 그를 타박하기만 했다. 그럴수록 지혜 씨는 점차 더 움츠러들었다. 결국 중학교도 2년 유예를 했고 지난해에서야 졸업했다. 복지시설의 도움으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여기서도 적응은 쉽지 않았다. 2년간의 침대 생활로 체중은 불어나 친구들은 "냄새난다"며 지혜 씨를 피했다. 결국 한 달도 안 돼 지혜 씨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침대에서 보내는 하루. 기분은 하루에도 열 번이 넘도록 변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을 때면 극도로 행복해졌다 순간 허망함과 외로움, 우울함이 몰려 들어온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인 모를 기분,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슬픈 생각에 얼마 전까지 작은 희망을 품고 꿈꿔봤던 '웹툰 작가'도 포기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할 용기와 자신감마저 없는 그에겐 아직 세상에 나설 힘이 없다.


◆ 남편 폭력으로 상처 입은 엄마

지혜 씨의 옆방엔 엄마 김영린(가명·52) 씨가 침대 위에 누워있다. 침대에서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계속 손을 떨던 그 역시 마음의 병이 깊다. 결혼 전에는 버젓이 회사 생활도 잘했던 영린 씨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삶은 180도로 달라졌다. 지혜 씨를 가졌을 때도 남편의 폭력은 지속됐고 딸이 태어나도 머리를 숱하게 맞았다. 그 뒤로 모든 게 무섭고 두렵고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 상태가 계속 악화한 지는 어언 8년째. 모녀는 좀처럼 대화가 없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지혜 씨는 점차 커가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엄마에게 말을 붙여보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지혜 씨도 마냥 엄마를 돌볼 수가 없다. 그렇게 둘은 기초생활수급비 100만원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며 따로, 또 같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모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서로의 존재다. 지혜 씨는 엄마 병이 나으면 본인의 마음도 괜찮아질 거랬다. 그런 엄마와 단둘이 여행도 가보고 싶고 다정한 모녀 사이가 되고 싶다. 영린 씨 역시 지혜 씨가 그저 건강하고 좋은 마음을 먹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꾸준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돈이 드는 탓에 마음껏 받을 수가 없다. 생활비가 더 필요하지만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렇게 모녀는 각자의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를 안은 채 말없이 살아가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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