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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방 안에 들어앉은 권재계(64) 씨가 탁자에 놓인 사진을 바라본다. 가족사진이다. 사진 속 꽃밭에는 아내와 딸,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손을 뻗어 액자를 만지작거려 본다. 그리운 딸과 아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만져보면 여한이 없겠지만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권 씨는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만지작거린다. 18년 전 연락이 두절된 딸과 아들이 혹여나 자신을 찾을까 싶어서다. 딸은 번호를 바꿔 아예 연락할 방법이 없고 아들의 번호는 가지고 있지만 먼저 통화버튼을 누를 순 없다. 뒤늦게 연락해 괜한 짐을 지우긴 싫다. 권 씨는 백혈병 투병 중이다.


◆ 가족과 이별, 사업 부도에 백혈병까지

지난 1985년 혼인을 한 아내는 결혼생활 15년 만에 관계가 틀어졌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 권 씨의 가정은 무너졌다.

아내는 떠났지만 아이들은 권 씨 곁에 남았다. 중학생이었던 자녀들을 공부시키려면 더 악착같이 일을 해야 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출장도 자처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달랐다. 아빠가 집을 비우는 동안 스스로 밥을 해 먹는 것은 물론 집안 살림도 모두 해내야 했다. 결국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떠나버린 딸과 아들은 연락이 끊겼다.


홀로 남게 된 권 씨는 집을 정리하고 직장 내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빨리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그런 그는 지난 2013년 철광 기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구 외곽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았다. 세금이 밀리는 것은 물론 직원 인건비까지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3년 만에 부도가 났고 권 씨는 빚더미에 앉았다.


불행은 한꺼번에 덮쳤다. 공장이 문을 닫은 해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가진 건 빚더미뿐인 그는 당장 치료를 받을 형편도 안됐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서 뒤늦게 치료를 받았다. 2년간의 힘든 치료로 몸은 좀처럼 버티질 못했다. 담석은 부풀고 비장도 모두 망가졌다. 결국 올해 1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게 됐다.


◆ 거처 못 구해 전전긍긍

권 씨는 일주일에 한 번 병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매일 집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그에게 병원 가는 날은 꼭 '나들이'를 가는 것만 같다. 면역력이 약해져 의사는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절대 이용해선 안 된다곤 했지만 수급비 70만원으로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려면 왕복 10만원 가까이 드는 택시를 이용할 순 없다. 그래도 오가며 버스와 지하철에서 하는 사람 구경은 권 씨에게 유일한 낙이다.


하지만 몸 상태는 자꾸만 악화된다. 피부는 벗겨지고 독한 약 탓에 속은 자꾸만 뒤집어져 입맛도 사라졌다. 입과 식도도 다 헐어버려 음식을 삼키기도 어렵다. 권 씨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은 수프. 사실 고기를 갈아 넣은 죽 등 영양식도 먹을 수 있지만 이를 살 돈이 없어 저렴한 수프를 택했다.

그렇게 하루를 버텨가는 권 씨에게 최근에 또 큰일이 찾아왔다. 현재 친한 동생의 집에서 적은 월세를 내고 살고 있지만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 급히 방을 빼주게 된 것이다. 급히 임대주택 신청을 했지만 대기 순번은 17번. 당장 빚만 1억원인 데다 모아둔 돈도 거의 없어 이사를 할 수가 없다. 하나뿐인 친동생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싶지만 그 역시 사업이 망하면서 가족과 함께 도피 생활을 하는 터였다.


해결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 쓸 방법은 없다. 얼마 전에 시력까지 안 좋아져 이제 방 안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게 권 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온갖 우울한 생각이 권 씨의 마음을 헤집는다. 그럴수록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경주의 한 놀이공원에서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난다는 권 씨. 그렇게 그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꾸역꾸역 견뎌내는 중이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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