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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다 될 무렵, 대구의 한 원룸에서 엄마 이가연(가명·48) 씨가 부랴부랴 짐을 싼다. 큰아들 찬성(가명·16)이와 작은아들 찬형(가명·14)이와 함께 지내는 작은 공간에서 세 모자가 함께 잠자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찬형이가 "가지말라"며 엄마 팔을 잡고 늘어져 보지만 "둘이서 편히 자라"며 가연 씨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온다.


오늘은 좁게라도 이곳에서 잠을 잘까 싶지만 우울증이 심한 큰아들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찬성이, 찬형이가 잠을 잘 때만큼은 편하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아이들에겐 친구 집에서 생활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왔지만 사실 갈 곳이 없다. 몇 번 신세를 졌던 터라 친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 순 없다. 그런 가연 씨가 한참 걷다 앉은 곳은 인근 공원이다. 이곳에서 또 밤을 새워야 한다. 잠깐 의자에 기대어 눈을 붙이면 아침이 금세 올 것이고 그럼 아침밥과 살림 핑계로 집으로 갈 수 있다. 그렇게 가연 씨는 긴긴밤을 견디고 있다.


◆  두 아들과 고향으로, 친정 식구들은 외면만

20년 전 아이 아빠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혼인신고도 없이 살다 아이 두 명을 낳았고 술만 먹었다 하면 터지는 갈등을 견디지 못해 지난 2007년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아이들은 친정엄마에 맡긴 뒤 일을 시작했다. 식당 서빙, 마트 계산원, 유흥주점 주방 아르바이트 등 밤낮없이 일만 했다. 아이들과 집을 구해 떳떳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작은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2년 전 친정엄마에게 뇌경색이 찾아온 후부터였다. 갑자기 쓰러진 엄마의 모습에 가족들은 모두 가연 씨 탓이라고 했다. 아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일을 하러 갔다는 이유에서다. 애먼 엄마만 고생시켰다며 모두가 가연 씨에게 등을 돌렸다. '돈 버느라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은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도 가연 씨는 가족에게 연락 한 통 받지 못한 채 이별을 해야 했다.

모두가 외면한 가연 씨네 식구는 그 길로 원룸으로 나앉게 됐다.


◆ 우울증 심한 큰아들, 엄마도 유방암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건 건 큰아들 찬성이었다. 외할머니 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인지 찬성이는 할머니 죽음 이후 마음의 안정을 쉽게 찾지 못했다. 그 후 찬성이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자해를 시작했다. 설상가상 사춘기까지 겹쳐 찬성이는 속마음을 도통 엄마에게 털어놓지 않은 채 입만 꾹 다물고 있다.


형이 받는 고통을 오롯이 지켜봐야 하는 건 둘째 찬형이다. 어린 나이에도 찬형이는 형의 자해를 뜯어 말려야 했다. 그런 찬형이는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렸다. 집 안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얼마 전 '꼭 호강시켜드릴 테니 제발 곁을 떠나지 말라'는 굳건한 다짐의 편지를 엄마에게 건넸다. 찬성이는 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찬형이는 이마저도 받지 못해 가연 씨는 더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게 아들만이라도 편한 생활을 위해 노숙을 하며 돈을 벌고 있던 가연 씨에게 두 달 전 악재가 겹쳤다. 계속된 가슴 통증으로 찾은 병원에서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한 차례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고 앞으로 몇 년간 항암치료가 필요하지만 당장 수중에는 돈이 없다. 이제껏 대출한 돈만 2천만원인 데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비 110만원이 전부다. 갚아나가야 할 돈도 만만찮은데, 돈이라는 등짐은 더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 그동안 번 돈으로 그간 제대로 보내지도 못했던 학원이라도 보낼까 싶었지만 당장 병원비로 써버려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아이와 함께 살 큰 집으로 이사도 가고 싶지만 이마저도 물거품이 돼 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아들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가연 씨는 먼 훗날의 단란할 가족의 모습을 그리며 인근 공원으로 떠났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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