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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앞에서 늘 웃는 엄마가 있다. 최세희(가명·39) 씨의 첫째 아들 재훈(가명·9)이는 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어릴 때부터 멍이 잘 들었던 재훈이는 세 살 때 백혈병 판정을 받고 6년째 병원 생활 중이다.


그런 재훈이는 조금이라도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지면 안절부절못한다. 지난번에는 세희 씨가 잠시 멍을 때렸는데 그걸 보던 재훈이가 입을 뗐다.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


그날부터 세희 씨는 아이 앞에서는 어떤 힘든 내색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재훈이가 잠든 밤, 병실 불이 꺼지면 세희 씨는 짊어진 짐이 너무 버거워 소리 없는 울음을 쏟아낸다.


◆ 가족 버리고 도망간 남편

한 달 전 세희 씨 남편은 '내일 마치고 병원으로 갈게'라는 문자 한 통만 남긴 채 사라졌다. 재훈이의 투병 생활로 경북 구미에 터를 둔 부부는 떨어져 생활했다. 세희 씨는 재훈이 간호를, 남편은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 초기부터 도박에 손을 댔다. 아이가 아프고 난 후엔 마음을 잡은 듯 했으나 혼자 지내던 그는 다시 도박을 시작했다.


이 모든 사실을 세희 씨는 남편이 실종되고 나서야 알았다. 연락 두절된 남편으로 어안이 벙벙하던 차 "돈을 갚으라"는 전화가 세희 씨에게 쏟아졌다. 남편은 회사에서 퇴사 처리가 된 지 오래였고 남편 명의로 돼 있던 집마저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설상가상 남편은 외도까지 일삼았다. 그는 온갖 사기를 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었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났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재훈이는 당장 5월에 혈액 내의 면역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앞둔 터였다. 특히 수술에는 당장 4천만원의 돈이 필요했지만 더 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남편이 남긴 빚도 10억원이었다.


◆ 둘째는 소이증…수술 필요하지만 돈 없어

세희 씨가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집에는 여섯 살 둘째 딸이 엄마만 기다리고 있다. 재훈이가 막 병원에 입원했을 때 둘째 재희(가명)가 생겼다. 하지만 아픈 첫째를 돌보느라 세희 씨는 재희를 거의 키우지 못했다. 할머니 집에 맡겨진 재희는 친척들이 번갈아 가며 키워주고 있다. 유치원에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라며 펑펑 울었다는 선생님의 하소연에 세희 씨는 가슴이 찢어진다.


그런 재희 역시 선천성 기형으로 한쪽 귀가 없는 '소이증'을 앓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귓바퀴를 만들어주는 수술이 필요하지만 당장 재훈이 치료가 급해 딸의 치료는 자꾸 후순위로 밀린다. 재훈이 역시 병이 두 번이나 재발한 탓에 이번 수술이 지방에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치료다. 이 치료마저 듣지 않으면 이들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세희 씨는 남편이 남긴 상처에 다친 마음을 회복하지도 못한 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서류상 등본엔 남편이 버젓이 있고 남편 명의의 집과 차도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모두 자격이 되지 않는다. 도움을 받으려면 남편과 이혼을 해야 하지만 도통 그를 찾을 수가 없다. 경찰서에 매번 찾아가 보지만 카드 사용이나 위치 기록이 뜨지 않아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말뿐이다.


아들을 잠시 두고 일을 하러 나갈까 싶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겉으로 밝은 척을 하는 재훈이는 엄마가 잠시 외출을 할 때면 밥도 먹지 않고 옆자리 보호자가 말을 걸어도 입만 꾹 다물고 있다. 혹여나 엄마가 사라질까 내심 불안한 것이다. 세희 씨 부모님은 어린 시절 이혼했고 친동생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 도움을 받을 가족마저 없다.


그렇게 세희 씨는 마음에 부담을 가득 안은 채 오늘도 웃는다. 입맛은 없어진 지 오래고 불면증에 시달려 몸은 엉망진창이지만 아들만큼은 마음 편히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다.

한참 울던 세희 씨는 재훈이의 병실 문 앞에서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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