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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초침만 흘러가는 소리만 가득한 경북 한 시골 마을의 작은 빌라. 오후 4시를 알리기 10분 전임을 확인한 조성희(가명·55) 씨는 침이 바짝 마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한때는 가장 사랑하던 존재였으나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돼버린 아들 박종열(가명·26) 씨가 곧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종열 씨는 지적장애를 지녔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종열 씨는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폭력과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만성 우울증에다 다리 통증으로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성희 씨는 매번 아들의 협박을 그저 견뎌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엄마는 매일 아들이 중증장애인 자립 지원센터에서 오는 오후 4시에 맞춰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는다.


◆ 노름 일삼던 남편과 이혼, 아들은 지적장애


성희 씨는 평생을 '돈' 협박에 시달렸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은 도박에 빠져 생활비를 모조리 탕진했다. 매번 술을 먹고 돌아온 집에서는 성희 씨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욕설을 해댔다. 돈을 주지 않으면 아들을 내다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일삼았지만 성희 씨는 육아만 전념했던 터라 협박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종열 씨가 5살 되던 해 남편은 집을 나갔다.


방 한 칸짜리 빌라에 다시 터를 잡은 모자는 새 삶을 시작해야 했지만 성희 씨는 좀처럼 의욕을 가지지 못했다. 대학생 때 피아노를 전공하는 등 앞길이 창창하던 그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뒤바뀌어버린 삶에 그만 우울증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어떻게든 아들과 살아보려 피아노 레슨을 해보기도 했지만 점차 심해지는 우울증에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근로 능력도 점차 떨어져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종열 씨가 중학생이 되던 시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이들 앞을 가렸다. 아들이 지적 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다. 둘만 남게 되고서야 제대로 살펴본 아들은 학습 능력과 지적 수준이 많이 떨어진 데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그런 종열 씨를 어떻게든 교육시켜보고자 아등바등 애썼다.


◆ 폭언과 협박 일삼는 아들, 만성 우울증 덮쳐


종열 씨와 성희 씨는 다정하지 못한 모자 사이었다. 종열 씨는 늘 반항심이 가득했고 만성 우울증에 자책감만 심해지던 성희 씨 역시 아들에게 따뜻하지 못했다. 그런 종열 씨는 성인이 된 후부터 자기 통제가 쉽지 않았다. 특히 본인이 갖고 싶은 건 무조건 가져야 한다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투정은 난폭한 행동과 폭언으로 변했다. 매번 돈을 내놓으라며 엄마를 밀치거나 '창문을 깨버리겠다'고 협박에 나섰다.


성희 씨는 점차 아들이 두렵지만 정작 아들과 떨어져 지낼 공간이 없다. 남편과 이혼 후 정착한 이곳은 방 한 칸에 거실이 전부. 심지어 종열 씨가 온갖 물건을 사는 탓에 거실은 이미 창고로 변했다. 모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곤 안방 침대뿐이다. 좁은 침대 위에서 엄마는 그저 꾹 참고 아들의 폭언과 폭력을 가만히 감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성희 씨의 일과는 침대에서 시작해 침대에서 끝난다. 아들이 없는 시간에는 휴대전화에 음악만 틀어놓은 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다리 통증으로 일어서 있지 못하는 그는 밥도 해 먹지 않는다. 복지센터에서 가져다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다 몇 숟가락 먹지 못하고 치워버린다. 아들의 협박에 돈을 줘야 할 날이 많아 식비와 생활비, 난방비는 아예 안 쓴 지 오래다.


그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하는 중이다. 이미 성희 씨를 뒤덮은 지 오래된 우울증으로부터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데다 척추협착증, 고혈압, 만성 두통으로 몸도 망가지고 있다. 복지센터의 도움으로 몇 번 치료에 나서봤지만 치료를 감당할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일찌감치 포기한 지 오래다.


부디 아들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방 한 칸이 더 있는 집이 절실하지만 이사는 꿈꿀 수 없다. 집값을 내고 아들에게 돈을 주면 남는 돈은 아예 없다. 대인기피증이 심해 내내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던 그는 좀처럼 입은 열지 않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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