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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라도 좀 해주지…. 아플 때 아프다고 해주지…."

"뭐하러 이야기하노. 먹고 살기 바빴다 아니가."

한밤중 이혼한 남편 김순호(가명·47) 씨의 전화가 왔다. 술을 한잔했는지 평소 무뚝뚝한 성격이었던 순호 씨는 미안한 감정을 아내 박영아(가명·47) 씨에게 쏟아낸다.


둘은 살기 위해 이혼했다. 공장에 다니며 두 아들을 키우던 이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하지만 3년 전 영아 씨가 신장이 망가지면서 그만 쓰러졌다.


가세는 계속 기우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못 됐다. 영아 씨는 남편만이라도 잘 살길 바라며 각자의 길을 걷자고 했고 본인은 두 아들과 함께 남았다.


◆ 병원비 감당 못 해 이혼, 아픈 몸 이끌고 홀로 아들 키워

장녀였던 영아 씨는 툭하면 외도에 가출을 일삼는 아버지가 미워 스무 살 때부터 집을 나와 홀로 생활했다. 대구, 수원, 광주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직장을 다니다 남편을 만났고 첫 아이가 생겨 지난 2010년 결혼했다.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 정착한 영아 씨. 둘째 아들도 태어났고 영아 씨 역시 곱창, 닭발, 일회용품 그릇 공장에 다니며 나름 가정을 잘 꾸려왔다. 그러던 중 영아 씨는 한동안 호흡 곤란에 시달렸다. 평소 고혈압, 당뇨, 빈혈이 있었던 터라 가볍게 넘겼지만 상태는 나날이 심각해졌다. 느지막하게 찾은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빨리 가라는 소리만 해댔다. '만성 신부전증'이었다.


치료는 당장 어려웠다. 병원비는 물론 차비, 약값도 만만치 않았다. 영아 씨는 얼마 없는 약을 쪼개 먹으며 간신히 버티고 버텼다. 열심히 돈을 버는 남편에게도 미안해 몸 상태를 숨기기 바빴다. 그러던 중 불행이 겹쳤다. 이듬해 남편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인공관절 수술을 앞두게 된 것. 돈이 더 이상 감당이 안 되자 모두가 살기 어렵다는 판단에 2년 전 부부는 갈라섰다.


두 아들 재호(가명·13)·재영(가명·9) 군과 남은 영아 씨. 아픈 몸을 이끌고 악착같이 공장을 다녔다. 하지만 영아 씨는 방치해 둔 병으로 결국 쓰러졌다. 급히 투석 혈관 수술을 받은 그는 이제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 투석 생활로 돈 못 벌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영아 씨는 늘 불면증에 시달린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본인의 앞날을 그려보다 외로이 남겨진 두 아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살던 집에서 퇴거명령을 받아 급히 이사를 해야 했지만 없는 형편에 원룸 이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보증금마저도 없어 이웃 동생에게 빌렸다. 방 한 칸뿐인 이곳, 아이들은 커 가는데 새 옷을 살 수 없어 매일 똑같은 옷, 남에게 얻은 옷만 입힌다. 전 남편 역시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 먹이라며 1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보내지만 본인도 형편이 안 돼 그 돈마저 주지 못할 때가 많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영아 씨에게는 아이들이 전부다. 친정 동생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데다 장녀임에도 잘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더 이상 친정에 전화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전 남편 역시 얼른 좋은 여자를 만나 앞길이 풀렸으면 하는 바람에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다. 갑자기 변해버린 생활에 하루에도 수십 번 삶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만 엄마가 없어질까 옆에 꼭 붙어있는 아들을 생각에 그는 외로운 싸움을 버티고 있다.


투석이라도 안 받았으면 생활이 좀 낫지 않았겠냐는 영아 씨. 일주일에 세 번씩 4시간을 투석 받고 오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버린다. 투석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돈을 벌러 나갔겠지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부업거리를 살펴보지만 일감도 없다. 그렇게 멍이 가득한 왼팔에 주삿바늘을 꽂기가 싫어 한참 주위를 배회하다 억지로 병원에 들어간다.


그런 영아 씨에게 주위 이웃들은 어떻게든 살라며 손을 내민다. 아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주는 분식집 언니, 공짜로 태권도를 가르쳐주는 큰아들의 태권도 사범…. 갚아야 할 은혜가 많다는 그는 금세 약해진 마음을 다시 다잡아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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