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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긴 아빠가 죽은 ××들만 사는 곳 아니야?"


큰아들 윤호(가명·14)가 학교에서 또 놀림을 받고 왔다. 엄마 최은숙(가명 43) 씨는 억장이 무너진다. 은숙 씨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모자원에 살고 있다. 아들은 친구들의 놀림에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기분이 축 처진 윤호는 "우리도 이사 가자"며 말을 건넨다. 하지만 당장 새집을 구할 돈이 없다. 엄마는 아들을 꼭 껴안아 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남편과 이혼한 뒤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모자원에 들어온 지 3개월째. 이곳에서 엄마와 네 명의 아이들은 살을 맞대며 버티고 있다.


◆ 경제적 문제로 남편과 이혼 후 모자원 생활

화물차로 전국 곳곳 배달을 다니던 은숙 씨의 남편은 좀처럼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7천만원 넘게 주고 산 차량의 할부 값, 수리비는 매번 큰 짐이 됐다. 네 명의 자녀들이 줄줄이 태어나지만 나날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졌다. 결국 밀려 버린 할부금, 이자 등으로 이들은 빚더미에 앉게 됐다.


은숙 씨도 어떻게든 손을 보태려 골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빚과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 몸 사리지 않고 매일 2~3시간씩 잠만 자며 번 350만원의 돈으로 여섯 식구가 버텼다. 하지만 부부는 점점 지쳐 갔다. 쌓여가는 빚의 무게로 부부는 갈등을 빚다 2년 전 갈라섰다.


네 명의 아이와 새롭게 시작한 삶.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엄마의 자신감은 나날이 사라졌다. 돈벌이에 육아까지 병행하는 탓에 은숙 씨 심신은 약해져 갔다. 하지만 큰딸 윤이(가명·20)가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해버려 몸을 더 혹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원을 선택한 이유도 매달 40만원의 월세를 아껴 딸의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 코로나19 감염으로 일 끊겨, 아픈 아이로 전전긍긍

모자원 입소 뒤 생활이 나아질까 하는 희망은 얼마 가지 못해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달 은숙 씨는 코로나19에 걸려버렸다. 계속되는 바이러스 검출로 은숙 씨는 꼼짝없이 한 달간 치료센터에서 나올 수 없었다. 자녀들마저 자가격리 대상자가 돼 모자원에 갇혀 있어야 했다.

엄마가 없는 사이 둘째 윤호, 셋째 윤빈(가명·12), 넷째 윤서(가명·9)를 돌봐야 하는 건 오롯이 큰딸 몫이었다. 그런 딸에게 우울증이 도졌다. 본인의 등록금로 엄마를 힘들게 했다고 자책한 탓이었다. 막내 역시 분리 불안이 도졌다. 한 달 내내 윤서는 매번 잠에서 깨 방문 곳곳을 열어보며 엄마를 찾았다.


은숙 씨가 돌아온 뒤 아이들의 증세는 나아졌지만 이젠 일이 끊겨버렸다. 감염자라는 인식에 일터는 은숙 씨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보지만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온다. 게다가 엄마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사실은 또 다른 놀림거리가 됐다. '쟤네 엄마 코로나 걸렸대'라는 놀림에 아이들은 계속 주눅들기만 한다.


엄마는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 생계비도 걱정인 데다 딸과 아들의 몸이 성치 않은 탓이다. 큰딸은 얼마 전 갑상선에 30개의 혹이 발견돼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셋째 은성이는 코와 인중 사이에 생긴 커다란 혹으로 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치과에서는 수백만원의 교정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당장 돈이 없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연명해가고 있지만 눈치가 보여 이제 '힘들다'고 털어놓지도 못한다. 얼마 전 은숙 씨의 골다공증이 심해져 다리까지 저는 탓에 새 일감은 좀처럼 쥐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다섯 식구는 온갖 세상의 인식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떳떳하게 정말 잘 살고 싶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은숙 씨는 본인이 힘들어하면 아이들이 더 힘들까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매일 밤 수면제를 먹으며 불안한 미래를 묵묵히 견디는 중이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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