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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병실. 막 검사를 받고 나온 김덕상(64) 씨는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조금 뒤 의사가 들어오더니 딸 김태희(39) 씨를 밖으로 데려갔다. 의사와 딸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병실 문에 조그맣게 달린 유리창 너머 간호사의 얼굴이 비쳤다. 혹여나 둘의 대화 내용을 덕상 씨가 들을까 조마조마하는 눈치였다.


그때 덕상 씨는 '본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대구의 한 작은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이었지만 의사들은 자꾸만 큰 병원을 가랬고 종착지는 서울의 큰 대학병원이었다.


"아빠 집에 가자"

조금 뒤 들어온 딸은 다짜고짜 집에 가자고 했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딸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덕상 씨는 딸의 표정에서 본인의 운명을 읽을 수 있었다. 폐암 말기에다 이미 암세포가 덕상 씨의 뇌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 평생 일만 하다 얻은 '폐암'

쉴 틈 없는 삶, 평생을 일만 하다 얻은 대가가 '폐암 말기'였다. 지난 1980년 대구의 한 공제조합에 취직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첫 결혼은 6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성격 차이로 갈등을 빚던 아내와 갈라선 뒤 홀로 6살, 4살이던 딸과 아들을 키웠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길로 덕상 씨는 다정한 아빠 대신 일만 하는 아빠를 택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고자 조합 대신 택시기사 일을 시작했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덕상 씨는 대부분 시간을 자녀 대신 손님과 보냈다. 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밥을 먹어야지'라는 생각은 길가에 손님이 보이면 바로 흩어졌다. 결국 '나트륨 부족'으로 쓰러졌다.


돈은 좀처럼 수중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장남 역할도 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동생이 세 명 있었지만 요양병원에 있는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덕상 씨의 몫이었다. 병원비, 생활비를 쓰다 보니 매번 월급은 모자랐고 빚은 쌓여갔다. 그렇게 성인이 된 자녀들은 서울로 떠났고 덕상 씨는 홀로 원룸과 단칸방 생활을 전전했다. 택시를 그만둔 뒤에는 식당에서 고기 손질과 굽는 일을 하며 남은 빚더미를 책임졌다. 하지만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됐다.


아픈 몸으로 중간중간 일을 쉬었던 그에겐 더 이상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세와 각종 공과금이 밀리던 차 다행히 지난해 구청의 한 공공일자리에 참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머리가 어지러운 날이 잦았다. 그렇게 느지막하게 받은 건강검진에서 폐암 말기 소식을 듣게 됐다. 식당에서 일하며 각종 연기를 흡입한 게 문제였다.


◆ 700만원 드는 한 달 약값, 치료 포기할까 생각도

덕상 씨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무엇보다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정작 본인의 약값을 자식들이 부담해야 할 처지여서다. 덕상 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지만 그가 먹어야 할 약은 비급여인 탓에 한 알에 25만원에 이른다. 상태가 심각한 탓에 항암치료도 어려워 유일한 치료제는 '약'뿐이지만 한 달 약값만 해도 700만원이다.


그의 소득은 수급비와 주거급여 64만원이 전부. 딸은 서울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고 아들은 10년 전 필리핀으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러 떠나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다. 딸 역시 형편이 넉넉지 않아 아빠를 살리기 위해 대출을 이리저리 내는 신세다. 그러곤 아빠가 걱정할까 '돈이 좀 생겼어'라는 착한 거짓말을 내뱉는다.


덕상 씨 역시 걱정 많은 딸을 위해 착한 거짓말을 건넨다. 독한 약 탓에 머리가 어질하지만 딸이 걱정할까 매일 같이 복지관에서 가져다주는 도시락을 사진으로 찍어 딸에게 '잘 지낸다'며 꼬박꼬박 메시지를 보낸다.


시한부 삶에 딸에게 빚을 남기기 싫어 약을 먹지 말까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는 덕상 씨. 그런 그는 매일 아침 동네 산 암자에 오르며 '제발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그렇게 그는 희망을 품은 채 단칸방에서 투병 생활을 견디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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