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캠페인 보기




찬바람이 서서히 온몸을 파고드는 지난해 늦가을의 어느 날. 구유정(가명·45) 씨는 그날도 어김없이 남편에게 맞고 있었다. 이유는 없는 폭력이었다. 유정 씨에게 향하던 발길질은 방 안에서 떨고 있는 세 형제에게 향했다. 큰아들 원균(가명·15)이마저 아빠를 말리기엔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원형(가명·14)이와 원서(가명·9) 역시 아빠의 무자비한 폭력에 나뒹굴었다.


그날 밤, 유정 씨는 세 아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곧장 폭력 피해 쉼터로 향했지만 오랜 기간 머무를 순 없었다. 인터넷으로 저렴한 집이 있는 곳을 싹 뒤졌다. 그렇게 모자는 옷 한 벌 챙기지 못한 채 빈손으로 쫓기듯 연고도 없는 대구에 정착했다.


◆ 순탄치 않은 삶, 남편의 폭력까지 더해져

평범치 않은 삶이었다. 유정 씨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친오빠가 가정불화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올케마저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갔다. 남겨진 두 명의 조카를 돌보는 것은 유정 씨와 부모님의 몫이었다. 유정 씨는 조카를 제 친자식처럼 키우며 이십대를 모조리 보냈다.


조카들이 성인이 돼서야 유정 씨는 제 삶을 시작했다. 그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울산으로 내려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3년간의 타지생활에 그만 우울증이 도졌다. 그해 마침 친정엄마의 유방암 소식까지 겹친 터였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올라왔다.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새 일자리에 나선 남편은 일을 꾸준히 다니지 못했다. 빚도 5천만원가량 졌고 각종 노름과 외도를 일삼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유정 씨의 추궁에 남편은 '의심을 한다'며 손찌검을 시작했다. 그렇게 폭력은 나날이 심해졌다. 아이들에게도 폭력은 물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다.


집에서 쫓겨나고 경찰서와 쉼터를 제집 드나들 듯하며 7년 가까이 버틴 유정 씨에게 또 한 번 충격이 왔다. 친정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소식이었다. 본인은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자식이었다. 그런 엄마는 제 자식처럼 유정 씨를 거둬 사랑으로 키워냈었다. 그 사실을 사십대가 돼서야 알게 된 유정 씨. 하지만 은혜를 보답할 길 없이 엄마는 유방암과 혈액암으로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 철 일찍 든 세 아들, 엄마 지키려 안간힘

이제 유정 씨 곁에 남은 건 세 아들뿐이다.

아빠의 학대로 특히 원형이와 원서는 성인 남성을 두려워한다. 도움을 주러 온 복지사를 보자마자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지고 숨기 바쁘다. 아이들의 마음엔 분노가 가득 차기도 했다. 원형이는 아빠의 행동을 따라 했다. 걸리적거리는 물건은 모조리 발로 찼다. 첫째 원균이 역시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막내는 엄마가 떠날까 하는 불안감에 매일 밤 잠에서 깨어나 엄마가 곁에 있는지 손을 뻗어본다.


다행히 아이들의 마음에도 점차 빛이 들고 있다. 특히 장남 원균이는 '가장'으로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선천적 발목 인대 기형과 천식을 달고 태어난 탓에 마음껏 걷는 게 힘들지만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고자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있다. 원형이와 원서 역시 엄마의 눈물에 "엄마, 우리는 괜찮아요. 우리가 엄마 지켜줄게요"라며 다독인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지만 돈 걱정이 크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주거급여로 생활을 연명하고 있지만 월 180만원으로 네 식구가 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특히 유정 씨는 남편의 폭력에 크게 넘어지면서 무릎 인대가 파열돼 걷는 게 힘들어 일을 구하기 힘들다. 액세서리를 만들어 시장에서 팔아보고 있지만 하루 수입은 5만원도 채 안 된다. 남편이 유정 씨 앞으로 받은 2천만원의 빚도 당장 갚아야 한다.


그런 유정 씨는 얼른 돈을 벌어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다. 제 아빠의 고집으로 새 운동화도 사지 못해 작아져 버린 운동화에 발을 끼워 맞추느라 아이들 발가락은 이미 굽어져 버렸다.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못 해 봤다는 유정 씨. 그는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옆에서 재잘거리는 막내 아들을 꼭 껴안는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가정복지회는 매일신문과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이웃사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성금은 소개된 가정에 전액지원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거주자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주세요. 전화 053.287.007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