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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낡은 빌라. 계단 전등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그곳엔 까만 모자를 푹 눌러 쓴 엄마 허재희(가명·42) 씨가 창밖을 보며 서 있다. 품 안에는 갑작스레 생겨버린 아이 장은비(가명·1) 양이 잠을 자고 있다.


재희 씨는 은비와 잠깐의 이별을 준비 중이다. 남편의 실직, 불어나는 대출금, 빚 독촉, 아픈 친정엄마… 재희 씨네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다. 차마 자라나는 은비에겐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엄마는 가정위탁을 택했다.

남들은 '그래도 제 자식을 직접 키워야 한다'고 훈수를 뒀다. 하지만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쁜 옷 하나 못 사주는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은비야 엄마에게 시간을 줘. 너를 꼭 데려와 번듯하게 키워낼게"

재희 씨는 마음을 다잡는다.


◆ 남편의 실직, 불어나는 대출금 갚지 못해 쫓겨나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지난해 남편 장준호(가명·46) 씨는 20년간 다니던 기계 부품회사에서 해고됐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월급이 몇 달간 밀리더니 아예 회사도 없어져 버렸다. 한 곳에만 오래 몸담아둔 터라 새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일용직 시장도 찬바람이 불었다.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러 매일 아침 집을 나서지만 매번 소득 없이 돌아온다.


집은 크게 휘청거렸다. 갚아나가던 집 대출금 등도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또 다른 대출에 손을 댔다. 결국 돈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그 후 각종 경고장이 집으로 밀려들어 왔다. 압류 딱지마저 붙이겠다며 협박 전화도 잦았다. 이제 이들은 집과 자동차마저 압류돼 곧 새 터전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


부부의 유일한 소득은 170만원의 재희 씨의 월급뿐. 재희 씨가 발달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분윳값과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는 첫째 아들의 등록금, 학교를 그만둔 둘째 딸, 신생아 막내, 그리고 몸무게가 28kg밖에 안 되는 재희 씨의 친정엄마까지 먹여 살리기엔 한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 신생아 육아, 아픈 친정엄마 돌보느라 심신은 만신창이

자녀와 친정엄마를 돌보느라 재희 씨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하루 8시간씩 성인 발달 장애인을 돌보고 온 집에선 은비의 육아가 시작된다. 생활비를 벌러 야간에라도 아르바이트를 나가볼까 싶지만 아직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은비로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새벽에 아이가 자주 깨는 탓에 재희 씨는 지난 4개월간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친정엄마를 돌보는 것도 재희 씨의 몫이다. 젊은 시절 아들을 잃고 친정엄마는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친정아버지도 일찍이 돌아가셨고 재희 씨의 친언니도 이혼해 상황이 좋지 않아 재희 씨가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 친정엄마는 당뇨에다 척추질환을 앓고 있어 몸무게는 어느덧 28kg까지 빠졌다. 툭하면 응급실에 실려 가지만 엄마는 "병원비가 적게 나오는 아침에 병원을 가면 된다"며 매일 밤 고통을 참는다.


둘째 딸 장은혜(가명·17) 양 마음엔 상처가 가득하다. 넉넉지 못한 자신의 가정형편은 따돌림거리가 됐다. 친구들의 비아냥거림에 학교도 그만뒀다. 은혜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엄마가 없는 시간 어린 동생과 할머니를 돌보느라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첫째 아들 장은호(가명·20) 씨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최근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하지만 그 역시 당장 입학하면 학자금 대출부터 받아야 하는 신세다.


재희 씨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밉다. 곧 집마저 뺏겨 대식구와 쫓겨 나갈 상황이지만 당장 이사비가 없다. 은비의 일주일 치 분윳값도 겨우 마련한다. 그렇게 어미는 어쩔 수 없이 딸 아이를 잠시 떠나보낸다. 재희 씨는 아스피린과 자양강장제 3병으로 매일 복잡한 머리를 달래며 버티는 중이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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