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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가을바람도 무색할 만큼 온기가 감도는 경북 구미의 한 임대아파트. 1인 병실을 방불케 하는 집에선 가래 끓는 소리와 산소포화도를 알리는 맥박측정기 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거실 병상 침대에 몸을 뉜 박혜성(가명·11) 군에게 창문 너머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졌다. 혜성이는 이제 막 잠이 든 상태였다. 그 옆에 앉아있던 혜성이 아버지 박준상(가명·55) 씨 눈에는 잠이 가득했다. 눈은 금세라도 감길 듯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반가운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내의 타지 생활로 혼자 혜성이를 돌본 지 7년째.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준상 씨의 말 사이로 문자 수신음 소리가 끼어들었다. '00씨의 채권 1천4백만원이 장기간 연체로 연체관리가 진행 중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생활이 오래됐다"며 눈을 비비는 준상 씨 뒤로 바닥을 드러낸 기저귀 통과 영양제 박스가 보였다.


◆ 돈 번다고 방치해 둔 아들의 병, '천추의 한'

준상 씨는 밥벌이 때문에 아들의 병을 방치해둔 게 한이라고 했다. 돌이 지나도 제대로 앉지 못했던 혜성이. 발달이 느리다는 이상한 낌새가 들어 병원을 찾았다. 뇌병변 장애라고 했다. 그저 괜찮겠지 싶었다. 실은 돈 버는 게 시급했다. 빌린 전세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쫓겨날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혜성이를 특수 어린이집에 맡겨둔 채 부부는 돈을 벌러 다녔다.


4살 무렵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혜성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뇌전증이 찾아온 탓이었다. 툭하면 경련과 발작이 일어났다. 어린이집에서도 쓰러지는 날이 잦자 부부는 더 이상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아픈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어느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했다. "당신이 혜성이를 돌봐주면 안 될까" 아내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동안 남편 대신 일을 병행하며 혜성이를 돌봐온 아내는 병들어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탓인지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의 병간호가 시작됐다. 아내는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며 일을 찾아 경기도로 떠났다.


◆ 24시간 아들 돌보던 아빠마저 우울증 증상 보여

준상 씨의 일상은 온통 혜성이다. 아들의 식사를 챙기고 등을 두드리고 가래 빼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는 끝난다. 가래를 자주 빼주지 않으면 폐렴에 걸리기 일쑤라 아이가 숨을 잘 쉬는지 눈을 치켜뜨고 바라봐야 한다. 2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주는 것도 필수다. 혹여 졸다가 까먹을까 핸드폰에는 알람이 수십 개나 예약돼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활동 보조사가 혜성이를 돌봐주면 그제서야 잠자리에 든다. 준상 씨는 밤에도 혜성이를 지켜봐야 하는 탓에 7년간 밤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새벽 시간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말할 사람도 없는, 적막감만 감도는 시간. 핸드폰 게임을 하며 긴긴밤을 지새워 본다. 그는 코로나19로 활동 보조사가 오지 못했던 올여름은 끔찍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24시간 내내 깨어 있어야 하는 탓에 혜성이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그런 준상 씨에게도 지난해 병이 찾아왔다. 홀로 혜성이를 돌보며 말없이 지내는 날이 빈번하다 보니 고요와 적막이 무섭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 숨이 턱턱 막혀오고 급격히 불안해지는 증상이 심해져 아내에게 전화 걸기를 반복했다. 부쩍 죽음에 대한 생각도 늘었다고 했다. 활동 보조사의 도움을 받아 보건소의 전화 상담을 받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울리는 빚 독촉 문자는 숨통을 조여온다. 기저귀, 영양제, 위루관 튜브 등 의료소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빌렸더니 빚은 2천5백만원가량 쌓였다. 모텔 청소 일을 하며 월 150만원을 버는 아내 월급으로는 빚을 좀처럼 메꾸기 어렵다. 비용은 많은데 갚아갈 길은 없다. 의료소품은 왜 그리 금방 없어지는지 몇십만원의 돈이 또 나갈 생각에 준상 씨는 눈을 질끈 감는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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