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캠페인 보기



"너는 자라 내가 되었구나…"
엄마 김장순(가명·41) 씨와 딸 박신애(가명·22) 양이 꼭 붙든 손은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서로의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둘은 안절부절못하며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이 세상 더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겐 서로가 전부인 듯했다. 엄마는 자신의 삶을 딸에게 물려주기 싫었다. 하지만 딸은 자꾸만 자신의 삶을 닮아갔다.


◆ 벗어날 수 없던 남편‧아버지의 폭력… 도망쳐 온 '모녀'
남편은 배 속의 아이보다 본인의 분풀이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임신한 장순 씨에게 주먹질은 물론 화가 나면 모든 물건을 집어 던졌다. 견뎌야 하는 건 남편의 폭력뿐만이 아니었다. 시어머니, 시누이의 등쌀도 참 사나웠다. 친정에 못 가게 막는 건 기본이고 둘째를 낳고도 장순 씨는 홀로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했다.

남편의 집착은 하늘을 찔렀다. 견인차를 몰던 남편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장순 씨를 쉬게 두지 않았다. 옆에 없으면 불안하다는 이유로 남편은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장순 씨를 데리고 일터에 나갔다. 장순 씨가 다른 남자와 말을 섞는 날에는 더 심하게 때렸다. 어린 두 자녀가 아버지를 말려도 소용없었다. "엄마 제발 도망가"라는 자녀들의 외침에 장순 씨는 8살 아들, 5살 딸을 두고 경남 거제로 도망갔다.


장순 씨가 떠난 뒤 폭력은 딸 신애 양으로 향했다. 엄마와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창고에 숨어 있다 아버지가 잠든 뒤에야 조용히 집에 들어오는 날이 반복됐다. 아무도 어린 신애 양을 감싸주지 않았다. 할머니와 고모는 밥을 차리라 난리였다. 외딴 차가운 방에서 몰래 숨겨둔 엄마 사진을 보고 매일 밤 울며 10년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신애 양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온 날을 잊지 못한다. 현관문을 열자 얼굴로 밥상이 날아왔다. 신애 양이 술집에서 일한다는 헛소문이 아버지 귀에 들어갔던 것.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외쳤지만 믿어주는 이 없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신애 양은 그 길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제발 나 좀 살려줘"

◆ 행복한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난치병마저 닮아버려

거제에 내려간 엄마의 삶도 나아지지 않았다. 두 딸을 낳아 새 가정을 꾸렸지만 두 번째 남편도 다를 바 없었다. 술을 엎었다는 이유로 5살 딸의 뺨을 때렸다. 장순 씨가 신애 양을 데리고 오자 폭력은 더 심해졌다. 다시는 이런 모습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없었다. 장순 씨는 세 명의 딸을 데리고 홀로서기를 택했다.


세상은 가혹했다. 대구의 한 모자원 도움을 받아 재기를 꿈꿨지만, 모자원 입소와 동시에 신애 양에게 사지 마비가 찾아왔다. 열이 펄펄 끓고 경기를 일으켜 급히 찾은 병원. 뇌혈관이 급격히 막히는 희귀 난치성질환인 '모야모야병'이랬다. 상태가 위독해 급히 수술을 마치고 나자 장순 씨가 쓰러졌다. 병명은 같았다. 중풍, 뇌출혈까지 찾아온 엄마의 몸은 이제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둘은 서로를 돌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한 차례 더 수술을 앞둔 장순 씨는 툭하면 쓰러지기 일쑤다. 신애 양은 아픈 엄마를 대신해 집안 생계를 짊어지고 나가야 한다.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 탓에 마음만 조급하다. 당장 수술비 1천만원을 마련해야 하지만 소득은 100만원 남짓한 정부 보조금이 전부. 어린 동생들은 언니 마음을 아는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장순 씨는 "상황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다. 어떻게든 살라고 등 떠미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신애가 조금씩 웃는다. 아픔이 어서 잊혔으면…"이라며 신애 양 얼굴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준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가정복지회는 매일신문과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이웃사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성금은 소개된 가정에 전액지원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거주자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주세요. 전화 053.287.0071


목록